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단편 '고향' 중에서

상하이 루쉰공원(上海鲁迅公园)에 방문했다.
동방명주와 난징둥루 보행자거리 등이 있는 상하이 도심에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지하철로는 3호선, 8호선의 환승역 虹口足球场(地铁站)으로 접근 가능하다.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공원에 진입할 수 있다.
루쉰공원은 한국과도 관련이 있는 장소다. 이 공원은 과거 훙커우공원(교과서에서 자주 본 이름!)이었고,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폭탄 의거가 있었다.
공원이 워낙 넓어서 다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공원 안에 윤봉길 의사 기념관도 있는 모양이다.

평일 낮인데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매공원' 문화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공원 바닥에 자녀 프로필을 붙이고 서로 혼담을 나누는 것이다.
공원 안에 월미도마냥 롤러코스터도 있다. 과연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게 크고 번화한 공원이다.
루쉰공원은 훙커우공원에서 이름이 바뀐 것이라고 했다. 중편 '아Q정전'으로 유명한 루쉰은 20세기 중국의 위대한 문학인이다. 마오쩌둥에 의하면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이기도 했단다. 근현대 중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굳이 루쉰공원에서 아Q정전을 읽고 싶어서, 한국에서 책을 들고왔다. 호수가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1시간 정도 읽었다.
아Q정전과 여러 단편들을 지금 읽다보면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한 부분을 깨닫는다.
단순히 '미친 사람의 망상이 알고보니 사실이었다?!' 정도로 읽었던 내용을 다시 보니 '광인의 시선에서 봉건사회를 은근히 비판했구나.' 하고 느끼는 식이다.
루쉰의 단편에는 신해혁명 전후 중국 소시민들의 삶이 담담히 기술되어 있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해학적이다.
아Q정전의 최애파트인 소위 '정신승리' 부분을 읽고 있었더니, 마침 어머니와 아이가 호수를 구경하러 내 앞에 나타났다. 한편 내 오른쪽에 앉은 노인은 정체불명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릴스를 틀었다.
중국 소시민(이라기엔 상하이 거주민들이니까 다들 부자겠지만...)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100년 전 중국 소시민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을 읽는 기분은 독특했다.
그도 이번만큼은 실패의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즉각 실패를 승리로 바꿨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힘껏 자기 얼굴에 두 번 연거푸 따귀를 때렸다. 얼얼하고 욱신거렸다. 그러자 기분이 한결 누그러졌다. 때린 사람은 자기고, 맞은 사람은 또 다른 자기 같았다. 이윽고 마치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 같아서 여전히 좀 얼얼하긴 했지만 흡족해하며 승리를 거둔 듯 드러누웠다.
- 루쉰 중편 '아Q정전' 중에서

기념관 앞의 안내문을 파파고로 번역해서 읽어봤다. 관명을 저우언라이가 썼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루쉰을 위대한 혁명가로 칭한 것도 그렇고 저우언라이가 관명을 쓴 것도 그렇고, 현대 중국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인 모양이다.

공원 한 편에는 세계 문학 거장들의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무릎이 노랗다. 저 무릎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사진을 찍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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