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맥주 한 캔 정도 방에서 마시고 자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상하이 여행은 호스텔이라 술을 마시긴 힘들고, 그렇다고 노상에서 술을 마시기엔 인민경찰과 공안이 신경쓰였다.
그래서 고덕지도(중국 지도 앱)에 숙소 근처의 바를 검색했다.
The White Hart白鹿酒吧(黄浦店)
숙소에서 5분 거리에 The White Hart라는 바가 있었다. 가보니까 술도 좋고 안주도 맛있긴 한데, 내 또래는 없고 중국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뿐이었다. 약간 나이트클럽 느낌이었다.

잔뜩 흘러나오는 중국 뽕짝을 감상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2명의 바텐더는 내 또래였다. 그들과는 파파고를 이용해서 대화했다. 기억에 남는 대화는, 중국인이 한국인과 같은 황인종이라서 여행하기 편하고 친절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바텐더는 이탈리아에 가봤는데 인종 차별을 겪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도 그렇고,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콧대를 세우고 어찌해도 백인이 될 수는 없다. 너의 뿌리를 알아라~' 발언도 그렇고,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면 황인종끼리의 단결을 호소하는 것이 국룰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텐더는 한국 여행을 온 적이 있는데, 물가가 비싸서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LV(루이비통) 등의 사치품은 저렴해서 많이 사왔다고 덧붙였다. 나도 쇼핑하면서 느꼈지만, 중국에서 루이비통이나 나이키 등의 외국 브랜드는 전혀 저렴하지 않고 한국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다. 중국이라고 물가가 모두 저렴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 바는 분위기가 좋고 맛있지만 내 또래가 없어서 슬프다."고 말하자 바텐더는 내 또래가 있을만한 perrys라는 바를 추천해주었다. 검색해보니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술집인 모양이었다. 다음날은 여기 가보겠다 말하고 바텐더와 헤어졌다.
Perrys(新淮海二店)

Perrys는 지점이 많은데, 내가 찾은 지점은 상하이의 번화가인 난징동루 보행자거리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들어가자마자 영어로 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미국 힙합과 팝, 한국 팝, 약간의 중국 팝이 흘러나오는 세련된 바였다. 테이블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주문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중국 전화번호가 없어서 주문이 안 되었다. 바 카운터에 직접 가서 주문했다.

술을 거의 다 마셨을 때쯤, 현지인과 대화해보고 까이면 그냥 집에 가면 되니까 싶어져서 앞 테이블 분들에게 파파고로 말을 걸었다. 의외로 흔쾌히 합석을 허락해주셨다. 그들은 상해외국어대학(上海外国語大学)에 다니는 동기 4명이었다. 마침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외국인인 나를 편하게 생각해주신 것 같다. 상해외대는 중국 외교부장(한국의 외교부장관에 대응되는 직책)을 배출했고, 외국어 교육에 있어서는 중국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라고 한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위챗(중국 카카오톡)과 샤오훙슈(중국 인스타그램)까지 깔게 되었다. 100MB짜리 앱들을 받느라 데이터가 바닥나서 로밍 11000원을 추가 결제했고, 내 폰의 정보들은 중국공산당에 모두 넘어가게 되었다.
무슨 용기인지 북한 드립을 쳐봤는데 다들 사색이 되길래 치지 않았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나는 의학을 전공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도 의사는 많은 공부와 수련을 거쳐야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나를 장난처럼 朴医生(박 의사) 하고 불러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서울대 공대에 다녔었다고 말하자, 그들은 이쪽의 경력에 더 관심을 가졌다.
서울대 공대 재학생의 실력은 결코 북경대 공대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거대과학에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뿐 아니라 절대적인 연구의 규모도 큰 영향을 끼친다. AI라든가 우주산업이라든가 하는 첨단과학은 국가규모로 인력과 자원을 갈아넣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가진 5천만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고, 한국의 국토는 작은 한반도의 아래쪽 절반뿐이다. 상방이 뚜렷한 것이다.

근처의 호텔 프런트에서 근무한다는, 나랑 동갑인 남자가 합석해서 총 6명이 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무거운 얘기는 접어두고 술게임을 시작했다. 손등치기, 주사위 5개 맞추기 등 새로운 게임을 많이 했다. 특히 주사위 게임은 중국에서 보편적인 술게임이라고 한다. 배워놓으면 언젠가 중국인을 접대할 때 써먹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한번쯤은 도움이 되겠지...
https://m.blog.naver.com/ddd909/221729878071
중국 술집에서 많이 하는 중국 주사위 게임 하는 법(+새로운 주사위 게임!)
중국 술집에 많이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컵에 주사위 5개가 담겨 있는게 종종 놓여져 있는 것들을 보셨...
blog.naver.com
나는 한국의 369게임, 보리쌀게임을 전파해주고 왔다. 중국인들이 1부터 10까지를 손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배워왔다. 중국은 숫자 3을 ok 제스쳐로 나타낸다. 왕게임의 경우에도 한국과 달랐다. 중국은 카드를 분배한 다음 명령을 내린다. "3번과 5번이 뽀뽀해." 이런 식이다.
K-POP은 주로 싸이와 빅뱅, 지드래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APT가 흘러나오자 다들 춤을 추며 아파트게임을 시작했다.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웅장해졌다.

상해외대는 아침 8시 반에 수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평일 내내 8시 반에 수업이 시작되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야간 자습시간까지 있어서 오후 8시에 수업이 끝나는 강행군이었다. 한 반에 24명이 있었고, 보여준 사진들을 봐도 거의 고등학교 교실 같은 분위기였다.
밤새 놀고 우육면으로 해장한 우리는 언젠가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학생들은 바로 상해외대로 갔고, 호텔 프런트 청년은 집으로 향했다. 나는 디디추싱으로 택시를 잡아 숙소로 향했다. 그들과는 지금도 위챗으로 간간히 연락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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