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웨이 타고 🇫🇷 파리 3박 4일
1일차 (파리 가는 날)
최근 기세등등하게 유럽에 취항했지만 비행기를 바꿔치고 연착이 잦아 악명이 높은 티웨이를 탔다.
(다행히 내가 탔을 때는 왕복 항공편 모두 연착되지 않았다. 그냥 복불복이다.)
인천에서 파리까지는 약 13시간 소요되었고 기내식이 2회 나왔다. 기내식은 2가지 메뉴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으며 한식과 양식으로 구성되었다. 비빔밥은 저가항공의 기내식 치고는 괜찮았지만, 국적기가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유럽 감성을 충전하기 위해, 방문 국가 배경의 영화 3편을 연달아 봤다.
'타인의 삶'은 처음으로 찾아본 독일영화인데 노잼이었다.
3번을 다시 본 '레 미제라블'은 볼때마다 프랑스뽕이 차올랐다.
'시네마천국'은 배경이 시칠리아여서 내가 방문할 곳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두 번째 기내식인 프렌치 브렉퍼스트는 소시지부터 감자, 계란, 베이크드 빈즈까지 음식의 식감이 균일하게 푸석푸석했다. 기내식 꼬박꼬박 먹고 영화를 보다가, 현지 시각 오후 5시 반에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새똥 묻은 공항순환열차와 파리 지하철을 연계하여 도심으로 빠져나왔다. 유럽에는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 기차나 지하철이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또 간판에 영어 병기가 안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요 단어를 현지어로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출구는 프랑스어로 Sortie, 이탈리아어로 Uscita)
딱히 관광지가 없는 파리 14구에 숙소를 잡았다. 서울로 치면 강서구, 양천구와 비슷한 노잼 로컬 동네다. 하지만 일드프랑스 광역권이 아닌 파리 자체는 좁은 도시라서, 에펠탑, 루브르 등의 주요 관광지와 파리 14구는 자전거로 20분의 가까운 거리다. 후술하겠지만 에펠탑 앞에서 와인 까다가 막차가 끊겨서 숙소까지 자전거 타고 오기도 했다.
13시간 비행 끝에 마주한 초저녁의 파리 길거리는 아름다웠다. 파리지앵들은 바게뜨나 계란을 껴안은 채 퇴근하고, 삼삼오오 노상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물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거나, 시도때도 없이 무단횡단하거나, 반려견이 길거리에 똥싸는 등 일견 무질서해보이는 모습도 있었다.
숙소 체크인하고 길을 나섰다. 트래블로그 카드를 사용해서 현금이 크게 필요가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 근처 ATM에서 비상금 100유로를 출금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대부분 카드 거래가 가능했지만 보증금, 잡상인, 자판기 등 현금이 필요한 일도 많았다.
https://maps.app.goo.gl/6EVMeRxUe8UdrcE97
L' Éphémère Alesia · 228 Av. du Maine, 75014 Paris, 프랑스
★★★★☆ · 음식점
www.google.co.kr
저녁을 먹으려고 근처 레스토랑을 찾았다. 유튜브에서 예습한대로 입구에서 얼타고 있었더니 점원이 와서는 식사할 거냐고 묻고, 원하는 자리를 물은 후 가게 안쪽으로 보내줬다.
영어 메뉴판도 없고 음식사진도 없는 고난이도 로컬식당이라서 주문이 힘들었지만 점원한테 추천해달라 하니까 몇 개 추천해주고 본인 베스트까지 알려줬다.
비프스테이크랑, 와인북에서 가장 저렴하던 와인을 주문했다. 레드이길 바랐는데 화이트여서 페어링에는 실패했다.
토마토랑 풀때기를 곁들인 미디움 스테이크 + 감자로 만든 무언가 조합이 왔다. 뒤에 작게 보이는 빵은 대부분의 식당에서 기본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어떤 메뉴를 시키든 빵을 안 준 레스토랑은 없는 것 같다.)
파리의 로컬 레스토랑 분위기는 자유분방했다. 뒤쪽에서는 점원이 유리잔을 깨먹고, 가게 안에 길고양이가 들어오고,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랑 식사하는 손님도 있고, 문 밖에서는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프랑스요리' 하면 이태리요리보다 고급지고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지인들은 김밥천국보다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코스 구성에 있어서는 메인+와인+디저트 정도면 양이든 구성이든 충분해보였다. 여기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스타터까지?
그리고 웨이터가 물을 준다고 하면 거절하는 편이 나았다. still water와 sparkling water 중에 무엇을 원하냐고 묻길래 sparkling water가 비싼 물이겠거니 싶어서 전자를 택했는데 에비앙이 와버렸고(...) 영수증을 보니까 와인보다도 비싼 6유로였다. 물은 셀프로 얼마든 퍼마셔도 되는 한국 식당과 크게 다른 점이었다.
아무쪼록 40유로(6만원)가 조금 덜 되게 나왔는데 프랑스에서의 첫 끼로는 더없이 좋았다. 숙소 복귀해서 씻고 잤다.
2일차 (몽마르뜨, 파리 디즈니랜드)
아침은 숙소 앞 빵집에서 초코 에클레어를 샀다.
근처 공원에서 비둘기를 벗삼아 빵을 먹었다. 파리바게뜨와 비슷한 맛이었다.
파리 올림픽 에디션의 교통카드 '나비고 이지'를 구매해서 지하철에 올랐다. Bonjour RATP 앱을 설치하면 스마트폰으로도 편하게 충전이 가능했다.
사랑의 벽을 잠깐 구경하고 몽마르뜨 언덕을 올랐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는데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배상금을 갚고 모은 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건축 배경도 배경이지만 건물 자체만 놓고 봐도 멋져서 역시 파리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 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채보상운동 기념 건축물?
몽마르뜨 언덕에는 잡상인이라든가 사인을 요구하는 수상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므로 아무에게나 사진을 부탁하면 안 된다.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많이 계시니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잘 들어주신다.
다음은 광역철도 RER-A를 타고 파리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요번에는 카페 유랑에서 동행을 구했다.)
동행 세 분과 함께 앵간한 킬러 어트랙션은 대부분 탄 것 같다. 어벤저스, 실내 자이로드롭, 스파이더맨, 라따뚜이, 토이스토리 바이킹, 슬링키, 크러쉬코스터(니모를 찾아서), 스타워즈, 캐리비안의 해적까지 야무지게 뽕뽑았다.
파리 디즈니랜드는 디즈니의 압도적인 브랜드파워로 지어진 놀이동산이기 때문에 '프랑스'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라따뚜이'만큼은 파리 디즈니랜드에만 있는 어트랙션이고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다.
동행이 있으니까 기다리면서 노가리 깔 상대도 있고 재밌었다. 내가 유럽여행 초보여서 그런지, 기다리면서 나눈 얘기들도 하나하나가 꿀팁이었다. '한인민박'의 존재를 여기서 처음 알았을 정도이니...
파리 디즈니랜드의 핵심은 저녁의 일루미네이션이다. 디즈니 픽사의 작품을 원체 좋아해서 볼만했다.
겨울왕국 테마에서는 프랑스어 버전 렛잇고가 흘러 나왔다. 모두 떼창하는데 누구는 영어로 "렛잇고~ 렛잇고~" 부르고 누구는 프랑스어로 "리브레~ 델리브레~" 하면서 따라부르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했다. 파리 14구는 주거구역과 상업구역이 분명히 구분되지 않아서인지 밤거리가 고요했다.
3일차 (개선문, 베르사유, 에펠탑 노상)
아침은 어제 갔던 빵집에서 또 빵을 먹었다.
다음은 그 유명한 에펠탑을 보러 갔다.
에펠탑 가는 버스 안에서 거대한 연양갱 모양 건물을 발견했다. 몽파르나스 타워라는데 실제로 보면 엄청나게 높고, 제2롯데타워처럼 도시 한복판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느낌이다. 건설 초기의 에펠탑이 욕을 들었듯이 도시 경관을 해친다며 파리 시민들의 욕을 들어먹고 있는 모양이다.
에펠탑 역시 생각보다 거대했다. 탑에 올라가진 않았고 밖에서 한참 구경했다. 포아송, 쿨롱 등 유명 과학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전날 만났던 동행과의 점심약속을 위해 마들렌느로 향했다. 수제버거 세트를 먹었다.
시그니쳐 버거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고구마 튀김이 맛있었다.
동행과 헤어지고 개선문으로 향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개선문을 지나 쭉 가면 신도시 라데팡스와 그랑데 아르슈(신 개선문)가 나온다고 한다. 개선문에 서 있으니까 멀리 늘어선 고층건물들이 보이긴 했다.
다음 일정은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프랑스 귀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가장 프랑스스러운 관광지이면서도, 잇달은 혁명으로 무너졌던 절대왕정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프랑스스럽지 않기도 한 관광지인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은 경복궁의 18배 넓이라던데, 실내장식 하나하나가 극도로 세련되었고, 건물은 웅장하며 압도적이었다. 동시대에 창덕궁 안에서 떵떵거리며 작은 반도를 지배하던 조선 왕들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원 역시 국가권력급 넓이를 자랑했다.
한적한 정원을 혼자 산책하고 있는데 프랑스인 여사님이 오셔서는 본인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사진 찍어드리고 갈랬는데 내 사진도 찍어주신다길래 얼떨결에 찍게 되었다.
이 앵글이 베스트라고 찍어주셨다. 불란서 감성 참 알 수 없다.
베르사유 궁전은 2시간 정도 구경하고 나왔다. 저녁에는 에펠탑 근처에서 노상 와인 마시는 동행을 구했기 때문에 Monoprix에서 와인과 샌드위치, 초콜릿을 사갔다. (Monoprix는 프랑스의 이마트 익스프레스라고 할 수 있는 소매 프랜차이즈다. 이곳저곳에 체인점이 있다.)
와인 동행과는 저녁에 접선해서 에펠탑 옆에 돗자리 깔고 5시간 동안 와인 5병을 마셨다.
심심할 때 뒤를 보면 에펠탑이 반짝거리는 게 근사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석촌호수에 돗자리 펴고 제2롯데타워 보며 소주를 까는 셈인데 이런 낭만이 나오지는 않을 거다.
파하고 나니 에펠탑 불이 꺼져 있었고 센강변에도 수상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웬 취한 양반들이 나한테 사무라이마냥 칼질하는 척을 하길래 놀아줄까 하다가 그냥 갔다.
공유자전거인 Dott를 타고 파리의 밤거리를 달려서 숙소에 복귀했다.
4일차 (루브르, 시내 산책)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브런치는 숙소 근처 브라세리에서 먹었다.
점원이 없고 사장 혼자 손님응대하는 경우에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자리를 잡아도 되고 결제도 카운터에서 직접 하는 등 한국 식당과 크게 분위기가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사장님이 날 일본인으로 알았는지 자꾸 아리가또(...) 박아주시는 게 신경쓰이긴 했다.
다음은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딱히 미술에 관심이 깊진 않아서 뮤지엄패스는 안 끊었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으니까...
10시 예약해놓고 12시에 도착했는데, 운 좋게도 단체관광객들과 함께 대기 없이 입장했다.
오디오 가이드 없이 감상했다. 동선은 네이버 블로그 글을 참고하였고 스핑크스, 니케 조각상, 모나리자, 민중 이끄는 승리의 여신, 뗏목에 타고 있는 양반들, 밀로의 비너스 등 주요작품 위주로 둘러보았다. 작품 제목 기억 안 나서 대충 썼다.
되게 옹졸해보이는 조각상을 마주쳤는데, 뒤편의 설명문의 읽어보니까 루브르 박물관 소장작 중에 가장 오래된(9천년) 요르단의 조각이라고 한다. 상설 전시품은 아닌 모양이었다.
센강에서 아몬드바 먹으면서 물멍했다. 유량이 엄청나고 면적도 넓은 한강과 달리 센강은 작고 아담하다. 서울 시민이 한강에 가려면 아무래도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건너서 한참을 가야 하는데, 센강은 그냥 도심에서 골목길 지나면 바로 강변이다. 여의도 직장인들이 여의도공원 가는 것처럼 파리 시민들은 편하게 센강을 찾는 느낌이었다.
전날 동행에게 추천받은 베르갈랑 정원 벤치에 누워서 멍때리고, 셰익스피어 중고서점을 구경하고, 그 앞에서 공사 중인 노틀담 대성당까지 봤다.
유람선 바토무슈는 탈 생각이 없었는데 루브르랑 묶인 티켓을 사버려서 타게 되었다. 이건 일몰 이후에 탔어야 하는데, 일정이 도저히 안 나와서 낮에 타게 되었다. 뒤에 계시던 한국인 부부와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https://maps.app.goo.gl/HC2DRYHWDEP7xo7i9
Le Petit Baigneur · 10 Rue de la Sablière, 75014 Paris, 프랑스
★★★★★ · 프랑스 음식점
www.google.co.kr
저녁은 숙소 근처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이번엔 스타터와 메인을 모두 주문했고 화이트와인까지 정상적으로 페어링해서 먹었다.
참치 스테이크 향이 되게 좋았다. 내가 30분만에 저녁을 해치우는 사이, 교양있는 노부부가 와인과 함께 여유로운 저녁을 즐기고 계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렇게 수준높은 음식을 즐기고 식사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이니 수상할 정도로 엥겔 지수가 높은 것도 당연하다.
프랑스에서 육류, 생선,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빵, 샐러드, 치즈 등 먹고싶던 것은 다 먹어서 여한이 없었다.
오후 9시, 야간버스에 올라타 독일 뮌헨으로 출발했다. 이로써 3박 4일의 파리 일정이 마무리되었다.